H마트가 만든 K-푸드 시장 1부
Updated: Aug 14

한인 이민자의 장보기 공간에서 미국 최대 아시안 슈퍼마켓으로
오늘날 미국에서 K-푸드는 더 이상 한인들만의 음식이 아니다. 라면과 김, 만두, 냉동김밥, 고추장, 불고기 소스는 미국의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국식 치킨과 바비큐, 떡볶이와 핫도그를 찾는 미국 소비자도 빠르게 늘었다.
K-팝과 K-드라마가 한국 음식에 대한 호기심을 높였다면, 그 호기심을 실제 구매와 식문화로 연결한 공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은 H마트였다.
H마트는 단순히 한국 식품을 판매하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미국 이민사회에 한국의 식재료를 공급했고, 한국 식품기업에는 미국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진열대를 제공했으며, 미국인에게는 낯선 한국 음식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입구가 되었다. 현재 미국에서 형성된 K-푸드 시장을 이야기하면서 H마트를 제외하기 어려운 이유다.

1982년 퀸즈에서 시작된 ‘한아름’
H마트의 역사는 1982년 뉴욕 퀸즈 우드사이드의 작은 식료품점에서 시작됐다. 권일연 회장이 설립한 첫 매장의 이름은 ‘한아름’이었다. 물건을 한 아름 가득 안는다는 한국적인 의미가 담긴 이름이다. 당시 미국에서 한국 식품을 구하는 것은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한인 이민자들에게 쌀과 김치, 간장, 고추장, 참기름, 생선, 채소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었다. 고향의 맛과 생활방식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초기의 한아름은 바로 이러한 이민자들의 필요를 해결하는 지역 식료품점이었다. 그러나 한인 인구가 뉴욕과 뉴저지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고 아시아계 이민사회가 성장하면서 매장의 역할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H마트는 한인만을 위한 식료품점에 머물지 않았다. 한국 식품을 중심으로 중국, 일본, 베트남, 동남아시아 식품까지 함께 취급하며 ‘한국 마트’에서 ‘아시안 슈퍼마켓’으로 고객층을 넓혔다. H마트가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역시 “The Best of Asia in America”이다. H마트에 따르면 현재 미국 내 매장은 97개를 넘어섰다. 1982년 퀸즈의 단일 매장에서 시작해 40여 년 만에 미국 최대 규모의 아시안 슈퍼마켓 체인으로 성장한 것이다. H마트 공식 회사 소개

H마트는 왜 단순한 한인 마트에 머물지 않았을까
H마트의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은 고객을 ‘한국인’으로만 정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초기 고객은 한국 식재료가 필요한 한인 이민자들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계·일본계·베트남계·필리핀계 등 다양한 아시아계 소비자가 유입됐다. 이후 K-팝과 K-드라마, 아시아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비아시아계 소비자까지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H마트는 상품 구성도 확대했다. 한국의 장류와 라면만 판매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일반 슈퍼마켓처럼 농산물, 육류, 수산물, 생활용품을 갖추고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식품을 한곳에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특히 신선식품은 H마트 성장의 중요한 기반이었다. 한국과 아시아 요리에 필요한 채소와 해산물, 얇게 썬 고기 (삼겹살, 항정살, 불고기),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다양한 부위의 육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했다. 일반 미국 슈퍼마켓에서 구하기 어려웠던 식재료를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강한 고객 충성도를 만들었다. 소비자는 라면이나 과자 한두 개를 사기 위해서만 H마트를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 일주일 동안 필요한 장을 한곳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매장을 찾는다. 이것이 단순한 전문식품점과 종합 슈퍼마켓의 차이다.

H마트가 판매한 것은 식품만이 아니었다
H마트는 한인 이민자에게 고향의 음식을 구할 수 있는 생활 공간이었다. 갓 만든 반찬과 김치, 떡, 빵, 한국식 정육과 수산물 코너는 미국에서 한국인의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했고 다소 클래식했던 푸드코트는 이 역할을 더욱 확장했다. 소비자는 매장에서 식재료를 구매하는 동시에 불고기, 비빔밥, 순두부, 국수, 한국식 치킨과 길거리 음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한국 음식을 잘 모르는 고객에게 푸드코트는 일종의 체험장이었다. 제품만 진열하면 소비자는 그것을 어떻게 조리하고 먹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러나 푸드코트에서 먼저 음식을 맛본 고객은 매장으로 이동해 관련 소스와 면, 냉동식품을 구매할 수 있다.
결국 H마트는 ‘식당에서 한국 음식을 경험하고, 슈퍼마켓에서 재료와 제품을 구매하며, 집에서 다시 한국 음식을 소비하게 만드는 순환구조’를 만들어냈다.
한국 식품기업이 미국 소비자를 만나는 진열대
한국 식품기업의 입장에서 H마트는 미국시장으로 들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관문이다. 미국의 일반 대형마트에 신규 상품을 납품하려면 일정한 판매실적과 유통 능력, 마케팅 예산이 필요하다. 미국 소비자에게 생소한 제품이라면 상품의 용도와 먹는 방법부터 설명해야 한다. 규모가 작은 한국 기업이 처음부터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기는 어렵다.
반면 H마트에는 이미 한국 음식에 관심이 있거나 익숙한 고객이 방문한다. 새로운 라면, 소스, 냉동식품과 스낵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높다. 한국 기업은 이 공간에서 미국 소비자의 반응을 확인하고 초기 판매실적을 만들 수 있었다.
H마트의 진열대는 한국 제품이 미국에서 판매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시험대였다. 이곳에서 인지도를 확보한 제품이 다른 아시안 마켓이나 온라인 유통, 일반 미국 슈퍼마켓으로 진출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결국 H마트는 이미 만들어진 K-푸드 시장에서 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식품을 반복적으로 노출하고 소비자에게 사용법을 가르치면서 시장 자체를 형성했다.
H마트의 진짜 경쟁력은 매장 수가 아니다
H마트의 외형적인 경쟁력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매장이다. 그러나 매장 수만으로 H마트의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다. 현재 18개주(State) 97개의 매장을 운영중이며 약 10억달러(1조 4천억원)의 매출 규모로 추정된다. (비상장 기업이라 공식 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진짜 경쟁력은 수입과 물류, 도매, 소매, 신선식품, 외식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한 데 있다. 한국 정부, 지자체, 농협,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수출기업과 함께 '미국 시장 진출 플랫폼'을 구축 한국과 아시아에서 상품을 확보하고, 이를 미국 각 지역으로 운송하며, 현지 매장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이 물류를 미국에서 운영하는 한국회사는 H마트가 유일하며,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렵다. 냉동·냉장 제품은 온도 관리가 필요하고 신선식품은 빠른 회전율이 중요하며 미국은 지역 간 거리가 넓고 주마다 소비시장과 인구구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과 아시아의 식품을 미국 소비자의 일상적인 식생활로 연결하는 유통 생태계가 H마트의 진짜 경쟁력이다.”
H마트는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운영 경험을 축적했다. 어느 지역에서 어떤 상품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다양한 아시아 식품을 한 매장에서 운영할 수 있는 상품구성과 물류망을 만들었다. (현지에서 근무할 수 있는 직원이 있다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한국과 달리 미국 에서 합법적으로 근무할수 있는 직원이 있다는 것, 미국에서 근무하고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에 식당과 베이커리, 반찬 코너, 푸드코트가 더해진다. H마트는 식품을 진열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소비자가 그 음식을 바로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H마트의 성장은 미국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
H마트의 성장 과정은 미국 내 아시아계 인구의 증가와 함께 진행됐다. 그러나 인구 증가만으로 현재의 성공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아시안 마트가 이민자들이 고향 음식을 구하는 공간이었다면, 오늘날의 H마트는 다양한 인종과 세대가 새로운 음식을 발견하는 공간이 되었다. 한국계 2세와 3세에게는 가족과 문화적 기억을 연결하는 장소이고, 비한인 소비자에게는 K-콘텐츠에서 본 음식을 실제로 만나는 장소다. 작가 미셸 자우너의 에세이와 책 《Crying in H Mart》가 미국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상징성을 보여준다. H마트는 하나의 슈퍼마켓 브랜드를 넘어 음식과 가족, 이민자의 기억을 연결하는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 신규 매장이 문을 열 때 수많은 소비자가 줄을 서는 현상도 단순히 한국 식품을 구매하기 위한 수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2026년 3월 캘리포니아 더블린 매장 개점에는 약 1만 명이 방문한 것으로 보도됐다. 이는 H마트가 특정 이민집단의 마트를 넘어 지역사회의 주요 식품·문화 공간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SFGATE의 더블린점 개점 보도
H마트가 없었다면 오늘의 K-푸드 시장도 달랐을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Costco, Trader Joe’s, Whole Foods와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한국식 제품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유통업체가 한국 식품에 관심을 갖기 훨씬 전부터 H마트는 미국 소비자에게 한국의 맛을 소개하고 있었다.
H마트의 역할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한인 이민자의 식문화를 유지시켰다.
둘째, 한국 식품기업이 미국에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초기시장을 제공했다.
셋째, 비한인 소비자에게 한국 음식을 경험하고 배우는 공간을 만들었다.
K-콘텐츠가 한국 음식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만들었다면, H마트는 그 관심이 실제 장보기와 반복 구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상품과 공간을 준비한 기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H마트는 K-푸드 열풍의 단순한 수혜자가 아니다. 미국 K-푸드 시장을 오랫동안 준비하고 직접 키운 주체 가운데 하나다.
이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하다
H마트의 역사적 공헌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 식품기업의 관점에서는 다음 질문도 필요하다. H마트 입점은 미국시장 진출의 시작인가, 아니면 완성인가? H마트에서 잘 팔리는 제품은 미국 주류시장에서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가? 한국의 중소 식품기업은 H마트에 들어가지 않고도 미국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가?
더 중요한 문제는 H마트 자체가 아니라 한국 기업의 의존 방식이다. H마트를 초기시장과 테스트베드로 활용하는 것과 미국 유통 전체를 H마트에 의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전략이다. H마트는 지난 40여 년 동안 미국 K-푸드 시장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한 길을 만들었다. 이제 한국 기업은 그 길을 통해 어디까지 갈 것인지, 그리고 그다음 길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다음 특별 리포트에서는 이 질문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H마트는 한국 식품의 미국시장 진출을 위한 관문인가, 아니면 한국 기업의 성장을 제한하는 한계가 될 수 있는가?
글/ 김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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