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할랄푸드와 할랄가이즈

뉴욕에 오면 한 번쯤 먹게 되는 음식이 있다. 바로 할랄 푸드(Halal Food)다. 노란색 밥 위에 구운 치킨이나 비프를 듬뿍 올리고, 그 위에 새콤하면서 고소한 화이트소스와 강렬한 핫소스를 뿌려 먹는 음식이다. 맨해튼을 걷다 보면 곳곳에서 할랄 푸드 카트를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뉴욕을 대표하는 길거리 음식 중 하나가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브랜드는 단연 할랄 가이즈(The Halal Guys)다. 뉴욕의 작은 푸드카트에서 시작한 할랄 가이즈는 미국을 넘어 해외까지 진출한 글로벌 외식 브랜드로 성장했다. 하지만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우리가 흔히 ‘할랄 음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할랄 가이즈에서 판매하는 치킨과 밥을 의미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렇지 않다. 할랄은 특정 메뉴의 이름이 아니라 이슬람 율법에서 ‘허용된 것’을 의미하는 훨씬 넓은 개념이다. 이번 글에서는 뉴욕의 대표적인 길거리 음식이 된 할랄 푸드의 시작부터 할랄의 정확한 의미, 그리고 왜 뉴욕에 이렇게 많은 할랄 푸드 카트가 생겨났는지 알아보자.
1. 택시기사의 한 끼가 뉴욕의 명물이 되다
뉴욕에서 할랄 푸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 할랄 가이즈다. 하지만 할랄 가이즈가 할랄 음식을 처음 만든 것은 아니다. 뉴욕에는 오래전부터 다양한 무슬림 이민자들이 살았고 그들을 위한 할랄 음식 역시 존재했다. 오늘날에도 맨해튼에는 Adel’s Famous Halal Food, Sammy’s Halal Food를 비롯해 수많은 할랄 카트와 레스토랑이 있다.
할랄 가이즈가 특별한 이유는 할랄 음식을 뉴욕의 대중적인 길거리 음식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할랄 가이즈의 시작은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집트 출신 창업자들은 처음에는 뉴욕에서 핫도그 카트를 운영했다. 그러다 맨해튼에서 일하는 무슬림 택시기사들이 종교적인 기준에 맞으면서도 빠르고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를 찾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뉴욕의 택시기사에게 식사 시간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차를 오래 세워두고 식당에서 천천히 밥을 먹기 어렵기 때문이다. 빨리 받을 수 있어야 하고, 한 끼로 든든해야 하며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야 했다. 여기에 무슬림 기사들에게는 할랄이라는 조건까지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밥 위에 닭고기와 고기를 올리고 샐러드와 소스를 곁들이는 플래터(Platter) 형태의 음식이었다. 빠르게 담아낼 수 있었고 한 접시만 먹어도 든든했다. 무엇보다 무슬림 택시기사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었다.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점차 일반 뉴요커와 관광객들까지 줄을 서기 시작했다. 특히 맨해튼 53rd Street & 6th Avenue의 카트는 뉴욕의 명물이 됐다. 할랄 가이즈의 성공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화이트소스와 핫소스다. 노란색 밥과 구운 고기만 놓고 보면 상당히 단순한 음식이지만, 크리미하고 새콤한 화이트소스와 강렬하게 매운 핫소스가 더해지면서 독특한 맛을 만들어냈다.
결국 무슬림 택시기사들을 위한 한 끼가 종교와 인종을 넘어 뉴욕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이 되었고, 이후 세계 여러 지역으로 확장하는 외식 브랜드로 발전했다. 할랄 가이즈의 역사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가진 이민문화가 어떻게 하나의 새로운 음식문화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2. 그런데 ‘할랄 푸드’는 정확히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할랄 푸드’라고 하면 할랄 가이즈 같은 치킨과 밥을 먼저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할랄(Halal)은 특정한 요리 이름이 아니다. 할랄은 아랍어로 ‘허용된 것’, ‘허용되는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먹거나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된 것을 의미한다. 반대되는 개념은 하람(Haram)으로, 이슬람 율법에서 금지된 것을 뜻한다. 따라서 할랄이라고 해서 반드시 중동 음식일 필요도 없고, 닭고기와 밥을 함께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과일과 채소, 곡물처럼 기본적으로 허용되는 식재료도 많다. 생선 등 해산물 역시 일반적으로 할랄로 받아들여지지만 세부적인 판단에는 이슬람 법학파에 따른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육류는 조금 더 복잡하다. 돼지고기는 대표적인 하람 식품이며 술과 취하게 하는 물질 역시 금지된다. 소나 닭, 양처럼 먹을 수 있는 동물이라도 이슬람의 기준에 맞는 도축과 처리 과정이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흔히 등장하는 것이 다비하(Dhabihah 또는 Zabiha)라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할랄이 단순히 ‘돼지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돼지고기가 없어도 알코올이나 허용되지 않는 동물성 성분이 들어가거나 육류가 적절한 기준에 따라 처리되지 않았다면 할랄로 인정받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식품회사나 레스토랑에서는 공인된 기관으로부터 Halal Certified 인증을 받기도 한다. 반면 ‘Pork Free’나 ‘Muslim Friendly’ 같은 표현은 할랄 인증과 같은 의미가 아니다. 돼지고기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전체 식재료 및 조리과정이 할랄 기준을 충족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는 식품기업 입장에서도 중요하다. 전 세계 무슬림 인구가 거대한 소비시장을 형성하면서 할랄은 이제 종교적인 개념을 넘어 식품 제조와 수출, 외식산업에서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한국 음식 역시 미국이나 동남아시아, 중동 시장으로 확장하려면 메뉴에 돼지고기가 들어가는지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소스와 조미료, 육류 공급망, 조리과정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결국 할랄은 하나의 음식이 아니라 음식이 만들어지는 기준에 가깝다. 그래서 할랄 치킨도 가능하고 할랄 햄버거도 가능하며, 조건을 충족한다면 한식 역시 충분히 할랄 음식이 될 수 있다.

3. 왜 뉴욕에는 할랄 푸드가 이렇게 많을까?
뉴욕을 걷다 보면 할랄 푸드가 특정 종교인들만을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이 금세 사라진다. 맨해튼 미드타운을 비롯해 직장인과 관광객이 많은 지역에서는 할랄 카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뉴욕에서 할랄 카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시의 인구 구성이다. 뉴욕에는 중동과 북아프리카뿐 아니라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 서아프리카 등 다양한 지역에서 온 무슬림들이 살고 있다. 택시와 차량 서비스 업계에도 무슬림 종사자들이 많았고, 이들을 위한 빠르고 저렴한 식사의 수요가 자연스럽게 존재했다.
하지만 할랄 카트가 지금처럼 커진 것은 무슬림 소비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싸고, 빠르고, 든든하고, 맛있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뉴욕 스타일 할랄 플래터는 상당히 단순하다. 밥을 깔고 그 위에 잘게 자른 치킨이나 비프·자이로 스타일의 고기를 올린다. 옆에는 양상추와 토마토 같은 채소를 곁들이고 마지막으로 화이트소스와 핫소스를 뿌린다. 특히 화이트소스는 뉴욕 할랄 카트 음식을 상징하는 맛이 됐다. 업체마다 레시피는 다르지만 크리미하면서 새콤한 맛이 기름지고 짭짤한 고기와 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여기에 매운 핫소스를 더하면 단순했던 밥과 고기가 전혀 다른 음식으로 변한다. 재미있는 점은 이러한 음식이 반드시 전통적인 중동 요리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뉴욕이라는 도시에서 여러 이민자의 음식문화와 미국식 길거리 음식 시스템이 만나면서 발전한 ‘뉴욕식 할랄 카트 음식’이라고 보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뉴욕의 할랄 푸드는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민자들을 위한 음식으로 시작해 택시기사와 직장인의 점심이 되었고, 이후 관광객들이 찾아 먹는 뉴욕의 명물이 됐다. 한때 핫도그와 프레첼이 대표하던 뉴욕의 길거리 음식에 이제 할랄 카트가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할랄은 더 이상 중동 음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할랄 버거와 치킨, 피자, 스테이크는 물론이고 할랄 방식으로 운영되는 한식 레스토랑과 한국식 치킨 브랜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외식시장에서 할랄이 하나의 중요한 소비시장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의미다. 뉴욕에 여행을 온다면 유명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먹는 것도 좋지만, 어느 날 점심에는 거리의 할랄 카트 앞에 서보는 것도 추천한다. 노란 밥 위에 뜨거운 치킨을 올리고 화이트소스와 핫소스를 뿌린 플래터 한 그릇에는 단순한 길거리 음식 이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무슬림 택시기사들의 한 끼에서 시작해 뉴욕을 대표하는 음식이 된 할랄 푸드. 어쩌면 뉴욕이라는 도시를 가장 뉴욕답게 보여주는 음식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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