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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날드 감자는 어디에서 올까? 미국 ‘감자의 고장’ 아이다호 이야기

Aug 14
4 min read


1. 미국에서 감자 하면 왜 ‘아이다호’일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대표적인 식재료 중 하나가 감자다. 한국에서 감자 하면 자연스럽게 강원도를 떠올리듯, 미국에서는 ‘아이다호(Idaho)’​라는 이름이 가장 먼저 등장한다. 미국 북서부 내륙에 위치한 아이다호주는 면적이 약 21만㎢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지역이다. 로키산맥을 끼고 있어 산악지대가 많지만, 주요 감자 재배지역은 서늘한 기후와 큰 일교차, 감자 재배에 적합한 토양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자연환경 덕분에 아이다호는 오랫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감자 산지로 자리 잡았고, 이제 미국 소비자들에게 ‘Idaho Potato’​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처럼 인식되고 있다.

아이다호에서 생산되는 대표적인 감자 품종은 러셋 버뱅크(Russet Burbank)​다. 길쭉한 모양에 갈색의 거친 껍질을 가진 러셋 감자는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접하는 감자와 식감이 조금 다르다. 감자는 전분과 수분 함량에 따라 크게 분질(Starchy)과 점질(Waxy)로 구분하는데, 러셋 감자는 전분 함량이 높은 대표적인 분질 감자다. 수분이 많고 단단한 점질 감자는 국이나 스튜, 샐러드처럼 형태를 유지해야 하는 요리에 잘 어울리는 반면, 러셋처럼 전분이 많은 감자는 익히면 속이 포슬포슬하게 변한다.

그래서 러셋 감자를 그냥 삶아 먹으면 한국 사람에게는 조금 퍽퍽하고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감자를 길게 썰어 기름에 튀기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겉은 바삭해지고 높은 전분 함량 덕분에 속은 하얗고 포슬포슬한 식감을 유지한다. 우리가 미국 햄버거 가게에서 흔히 접하는 프렌치프라이의 전형적인 식감이다.

결국 아이다호 감자의 경쟁력은 단순히 감자가 맛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프렌치프라이와 같은 가공식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기에 적합한 감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미국처럼 거대한 외식시장에서 같은 크기와 품질의 감자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강력한 산업 경쟁력이 된다. 그렇다면 아이다호의 광활한 농장에서 수확되는 수많은 감자는 어디로 팔릴까?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보는 5파운드, 10파운드짜리 생감자 봉투만 생각하면 아이다호 감자 산업의 진짜 규모를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 감자는 세척과 선별 과정을 거쳐 미국 전역의 슈퍼마켓과 식자재 유통업체로 향하지만, 상당한 양의 감자는 대형 식품가공 공장으로 이동한다. 이곳에서 감자는 냉동 프렌치프라이, 웨지감자, 해시브라운, 테이터탓, 매시드포테이토, 건조 감자 플레이크 등 다양한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가공된 감자는 슈퍼마켓뿐 아니라 패스트푸드 체인, 일반 레스토랑, 호텔, 학교, 병원, 경기장 등 거대한 푸드서비스 시장으로 공급된다. 일부 가공 감자 제품은 미국을 넘어 해외시장으로도 수출된다.

즉, 아이다호의 감자는 밭에서 수확되는 순간부터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다.

농장 → 저장 → 가공 → 냉동 → 물류 → 외식업체

로 이어지는 거대한 식품산업의 출발점이라고 볼 수 있다.






2. 아이다호 감자를 세계적인 산업으로 만든 ‘심플로트’


아이다호 감자 산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바로 J.R. ‘Jack’ Simplot​이다. 1909년 아이다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감자와 농산물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감자의 저장과 유통, 가공으로 사업을 확대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건조 감자 제품을 미군에 공급하면서 사업 규모를 크게 키웠다.
하지만 심플로트를 세계적인 사업가로 만든 결정적인 제품은 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냉동 프렌치프라이였다. 생감자는 장거리 운송과 장기간 보관이 까다롭다. 더구나 식당에서 프렌치프라이를 만들려면 감자를 세척하고 껍질을 제거한 뒤 일정한 크기로 잘라야 한다. 감자마다 수분과 당분 함량도 다르기 때문에 튀겼을 때 색깔이나 식감이 달라질 수도 있다. 심플로트는 이러한 작업을 대규모 공장에서 처리한 뒤 냉동 상태로 식당에 공급하는 사업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감자를 세척하고 절단한 다음 전처리하고 일부를 미리 튀겨 급속 냉동하면, 식당에서는 냉동 상태의 감자를 받아 마지막으로 튀기기만 하면 된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지는 방식이지만 당시 외식업계에는 상당한 변화였다. 매장에서는 감자를 일일이 깎고 자르는 노동력을 줄일 수 있었고, 폐기율도 낮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조리해도 비슷한 품질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아이다호에는 심플로트와 같은 기업을 중심으로 거대한 감자 가공산업이 성장했다. 오늘날 미국 북서부 지역에는 대형 감자 가공업체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들이 생산하는 냉동감자는 미국 전역의 레스토랑과 푸드서비스 시장으로 공급된다. 아이다호의 감자 농사 역시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작은 밭에서 가족들이 감자를 캐는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광활한 농장에서 대형 농기계를 이용해 파종부터 수확까지 진행하고, 수확된 감자는 거대한 저장시설과 가공공장으로 이동한다. 감자라는 평범한 농산물 하나를 중심으로 농업과 식품제조업, 냉동기술, 물류업, 외식산업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다.




3. 아이다호 감자와 맥도날드, 프렌치프라이의 역사를 바꾸다

그리고 아이다호 감자 이야기가 가장 흥미로워지는 지점에서 맥도날드(McDonald’s)​가 등장한다.
초창기 맥도날드는 지금과 달리 매장에서 생감자를 직접 손질해 프렌치프라이를 만들었다. 감자를 공급받아 매장에서 껍질을 벗기고 잘라 튀겼다. 매장이 몇 곳에 불과할 때는 가능한 방식이었지만 맥도날드가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수백 개, 수천 개의 매장에서 매일 생감자를 직접 손질하려면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지역과 계절에 따라 감자의 품질도 달라질 수 있다. 무엇보다 뉴욕에서 먹는 프렌치프라이와 캘리포니아에서 먹는 프렌치프라이가 서로 다른 맛을 낼 수도 있었다.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어디에서 먹어도 같은 맛’​이다.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냉동 프렌치프라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67년 심플로트는 맥도날드의 레이 크록(Ray Kroc)과 냉동 프렌치프라이 공급 계약을 맺게 된다. 공장에서 감자를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전처리한 뒤 부분적으로 튀겨 급속 냉동하면, 각 맥도날드 매장에서는 정해진 온도와 시간에 맞춰 마지막으로 튀기기만 하면 됐다.

매장 입장에서는 감자를 직접 깎고 자르는 작업이 크게 줄었다. 보관과 재고 관리도 쉬워졌고, 무엇보다 어느 지역의 매장을 방문하더라도 비슷한 품질의 프렌치프라이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결국 감자 농업과 냉동식품 기술이 패스트푸드의 표준화를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맥도날드가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냉동 프렌치프라이 시장도 함께 커졌다. 심플로트 역시 맥도날드와 함께 성장하며 세계적인 농업·식품기업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아이다호 감자와 맥도날드의 관계는 단순히 “맥도날드가 아이다호 감자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보다 훨씬 흥미롭다. 현재 맥도날드에서 판매하는 프렌치프라이의 감자가 모두 아이다호에서 생산되는 것은 아니다. 맥도날드는 Russet Burbank, Ranger Russet, Umatilla Russet, Shepody 등 프렌치프라이 생산에 적합한 여러 품종을 사용하고, 미국 여러 감자 생산지역과 공급업체를 통해 원료를 조달한다.

하지만 미국 냉동 프렌치프라이 산업의 성장과 맥도날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다호와 J.R. Simplot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또 다른 미국의 대표적인 햄버거 체인 파이브 가이즈(Five Guys)​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감자를 브랜드의 일부로 활용한다. 냉동 프렌치프라이를 사용하는 대신 생감자를 매장에서 직접 손질해 튀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매장에 감자 포대를 쌓아두고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감자인지 보여주는 것도 파이브 가이즈만의 특징이다. 맥도날드가 냉동감자를 통해 ‘표준화와 효율성’​을 만들어냈다면, 파이브 가이즈는 생감자를 직접 손질하는 과정을 ‘브랜드 경험’​으로 만든 것이다.

아이다호에서는 감자가 산업을 넘어 지역의 문화이기도 하다. 감자를 주제로 한 지역 행사와 축제가 열리고 감자 캐기, 퍼레이드, 각종 경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한국에서 ‘강원도 감자’라는 말만 들어도 지역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듯 미국에서도 ‘Idaho Potato’​는 단순한 농산물 이름을 넘어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결국 아이다호의 진짜 경쟁력은 감자를 많이 생산한다는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좋은 감자를 대규모로 생산하고, 이를 저장하고 가공한 뒤 냉동식품으로 만들어 미국 전역과 해외시장에 공급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맥도날드에서 별생각 없이 집어 드는 프렌치프라이 한 조각을 거꾸로 따라가 보면 이야기는 의외로 길어진다. 매장의 튀김기에서 시작해 냉동 물류센터와 감자 가공공장을 지나 미국 서부의 광활한 감자밭까지 이어진다. 그 과정에는 농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식품회사와 냉동기술, 물류기업, 그리고 수만 개의 매장에서 같은 맛을 만들어내야 하는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함께 존재한다.
감자 한 알이 세계적인 프렌치프라이가 되기까지.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왜 미국 사람들이 ‘감자’라는 단어에서 아이다호를 떠올리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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