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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원하는 것은 한국산 고기가 아니라, 안전하다는 증명이다

Aug 20
6 min read

2004년 미국에 삼계탕을 포함한 가금류 제품의 수출 허용을 요청했고, 이후 약 10년에 걸쳐 협상과 평가, 현장 실사, 검사체계 보완 등의 과정을 거쳤다. 2014년 미국 농무부 산하 식품안전검사국인 USDA FSIS가 한국의 가금류 검사 시스템을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공중보건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체계로 인정하면서 미국 수출의 중요한 길이 열렸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단순히 “삼계탕 수출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아니다. 미국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삼계탕 한 봉지의 맛이 아니었다. 특정 한국 기업의 공장이 깨끗하다는 사실 하나도 아니었다.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미국 소비자가 먹을 육류를 지속적으로 안전하게 생산하고 검사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


육류 수출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증명이다. 일반적인 가공식품과 육류·가금류 제품의 수출이 다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으로 육류나 가금류 제품을 수출하려면 해당 제품과 작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검사제도와 정부의 관리·감독 능력까지 중요해진다. 미국은 해외 국가의 검사 시스템이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공중보건 보호를 제공하는지를 평가하고, 승인이 이루어진 뒤에도 문서 검토, 현장 감사, 미국 입항 시 재검사 등을 통해 이를 계속 확인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안전성을 주로 서류, 검사, 현장 실사와 사람의 관리​를 통해 증명해왔다.하지만 AI와 센서, 데이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지금도 반드시 과거와 같은 방식에만 의존해야 할까?

나는 한국이 이 문제를 오히려 하나의 새로운 산업 기회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육류 수출의 핵심은 ‘더 싸게’가 아니라 ‘더 잘 증명하는 것’이다


미국은 세계적인 축산 강국이다.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를 대규모로 생산하고 있고 생산성과 가격 경쟁력 역시 강하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 시장에 생닭이나 돼지고기를 가져가 미국산 제품과 가격 경쟁을 벌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다. 한국이 경쟁해야 할 분야는 다른 곳에 있다. 삼계탕, 불고기, 갈비, 제육볶음, 닭갈비, 떡갈비, 양념치킨처럼 한국의 조리법과 가공기술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육류 제품이다. 미국에도 닭은 많다. 하지만 인삼과 찹쌀, 마늘을 넣어 만든 삼계탕은 단순한 닭고기가 아니다. 한국의 식문화와 조리기술이 더해진 완성된 상품이다.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다. 돼지고기 원육을 수출하는 것과 한국식 양념과 조리법, 가공기술을 적용한 제육볶음이나 갈비 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부가가치가 완전히 다르다. 문제는 이런 제품을 개발하는 것만으로 수출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육류가 포함되는 순간 식품안전과 동물질병, 도축, 가공, 검사, 추적관리 등 훨씬 복잡한 관리체계가 필요해진다. 그래서 앞으로 한국 육류 수출 경쟁력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뿐 아니라 신뢰를 얼마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느냐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 다름아닌 AI 기술이다. 한국은 AI, 반도체, 통신, 센서, 스마트팩토리 분야에서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술을 대부분 제조업이나 IT 산업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이 기술을 축산과 식품안전, 그리고 수출에 결합하면 어떨까? 나는 한국이 ‘K-Meat AI Export Cluster’, 즉 AI 기반 육류 수출전용 클러스터​를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국의 모든 축산업을 한꺼번에 바꾸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특정 지역을 선정해 미국을 비롯한 고기준 시장으로 수출하기 위한 농장, 도축장, 가공공장, 검사기관, 물류시설을 하나의 클러스터로 묶고 그 지역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관리되는 육류 생산지역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한국농장에서 미국 항구까지 하나의 데이터로 연결하자


가령 전북이나 충남, 경남 산청 등 축산과 식품가공 인프라가 갖춰진 지역 가운데 한 곳을 선정한다고 생각해보자. 그곳에 수출전용 AI 축산·식품가공 특화지역을 만든다. 수출용 가축을 사육하는 농장부터 사료, 용수, 동물약품 관리, 도축장, 가공공장, 냉장·냉동창고, 검사기관, 수출 물류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AI와 데이터 플랫폼을 둔다. 농장에서는 축사의 온도와 습도, 사료와 용수 관리, 가축의 건강 상태, 폐사율, 동물약품 사용 이력 등을 디지털로 기록할 수 있다. 도축 단계로 넘어가면 어떤 농장에서 온 가축인지, 언제 도축됐는지, 검사 결과가 어땠는지를 연결한다. 가공공장에서는 원료 입고부터 생산라인, 제품 온도, 가열공정, 냉각공정, HACCP 중요관리점 기록, 미생물 검사 결과 등을 디지털화한다. 제품이 완성되면 각각의 생산 Lot에 고유한 디지털 ID를 부여한다. 그러면 하나의 삼계탕 제품을 역추적했을 때 어느 농장에서 생산된 닭인지, 언제 도축됐는지, 어느 공장에서 어떤 공정을 거쳤는지, 검사 결과는 무엇이었는지, 어느 냉동창고를 거쳐 어떤 컨테이너에 실렸는지​까지 하나의 데이터 흐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에 콜드체인 데이터도 연결할 수 있다. 한국 공장에서 출발한 제품이 부산항이나 다른 수출항을 거쳐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적정 온도가 유지됐는지 기록하는 것이다. 특정 구간에서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상승했다면 시스템이 이를 자동으로 표시하도록 만들 수도 있다. AI의 역할은 여기에서 더욱 중요해진다. AI가 정부 검사관을 대신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식품안전의 최종 판단과 규제는 당연히 정부와 전문가가 해야 한다. AI는 사람이 수많은 기록 가운데서 놓칠 수 있는 이상 징후를 먼저 찾아내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농장의 폐사율이 평소보다 갑자기 높아졌다면 AI가 경고할 수 있다. 특정 가공라인의 냉각 온도가 반복적으로 정상 범위를 벗어난다면 자동으로 위험신호를 보낼 수 있다. 특정 작업장의 미생물 검사 결과가 장기간 조금씩 나빠지는 패턴을 보인다면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집중 검사를 권고할 수도 있다. 식품안전 관리가 사고가 발생한 뒤 원인을 찾는 방식에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을 먼저 발견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스마트 식품안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 모든 데이터를 보내자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증명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오해 하나를 피해야 한다. 이 시스템의 목적이 한국 농장의 모든 데이터를 미국 정부에 24시간 실시간으로 전송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어렵고 데이터 주권, 기업 영업비밀, 개인정보, 사이버보안 등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더 현실적인 방향은 한국 정부와 공인기관이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하고, 미국 규제기관이 필요할 때 검증 가능한 형태로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미국이 알고 싶은 것은 한국 농장의 CCTV를 하루 종일 보는 것이 아니다. 이 제품이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생산되었는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정확하게 추적할 수 있는지, 한국 정부가 해당 시스템을 제대로 감독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데이터의 신뢰성이다. 누가 입력했는지, 언제 생성됐는지, 이후 수정됐는지, 검사기관의 결과와 일치하는지 등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AI뿐 아니라 IoT 센서, 클라우드, 디지털 인증,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 등을 함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중요한 온도 기록을 직원이 하루가 끝난 뒤 종이에 적는 방식보다 센서가 자동으로 측정하고 저장하도록 하면 데이터 신뢰도가 높아진다. 검사 결과 역시 각 기관의 시스템과 자동으로 연결한다면 사람이 다시 입력하면서 생기는 오류나 조작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그리고 수출 제품의 Lot 번호 하나만 입력하면 관련된 핵심 안전정보를 빠르게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든다. 미국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도 장점이 크다. 현재 식품사고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가운데 하나는 어디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장부터 도축, 가공, 검사, 물류가 연결돼 있다면 문제가 된 Lot를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문제가 특정 농장이나 특정 생산일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면 불필요하게 전체 제품이나 산업이 피해를 입는 것도 줄일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편의의 문제가 아니다.


"수출국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한국 정부가 안전하다고 말합니다”보다 훨씬 강력한 것은 “여기에 생산 과정과 검사 결과가 있고 필요하면 바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라는 시스템이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이런 능력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고기가 아니라 ‘신뢰의 시스템’을 수출할 수 있다


나는 여기서 더 큰 가능성을 본다. 만약 한국이 AI 기반 육류 수출 클러스터를 실제로 만들고, 그 시스템을 이용해 미국처럼 기준이 높은 시장에 다양한 육류 가공제품을 안정적으로 수출하는 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한국이 가진 것은 단순한 식품안전 관리 프로그램이 아니다. 하나의 수출 가능한 기술이 된다. 세계에는 축산물을 생산하지만 미국, 유럽, 일본 등 고기준 시장으로 제대로 수출하지 못하는 나라가 많다. 제품이 나빠서만은 아니다. 국가의 검사체계, 추적관리, 데이터 신뢰성, 농장 관리, 도축 및 가공시설의 표준화 등 수출을 증명하는 시스템이 부족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해본다면 나중에는 그 경험과 기술을 다른 나라에 판매할 수 있다. 한국기업이 현지 농장에 스마트축산 시스템을 설치하고, 한국의 IT 기업이 데이터 플랫폼을 제공하고, 식품안전 전문기관이 HACCP과 검사체계를 컨설팅하고, 물류기업이 콜드체인을 연결하는 식이다. 하나의 소프트웨어를 파는 수준이 아니다.


Smart Farm + Food Safety + Traceability + AI + Export Certification


을 하나의 패키지로 수출하는 산업을 만들 수 있다.


나는 이것이 한국이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땅이 넓은 나라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나 돼지, 닭을 키우는 나라도 아니다. 미국이나 브라질과 원육 생산량으로 경쟁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작은 국토에서 생산과 가공, 물류, 통신, 데이터 관리 시스템을 촘촘하게 연결하는 것은 오히려 한국에 유리할 수 있다. 한국이 세계 최대의 육류 생산국이 될 필요는 없다. 대신 세계에서 가장 투명하게 관리되는 육류 생산 시스템을 가진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K-푸드의 의미도 달라진다.


지금까지 K-푸드는 주로 라면, 김치, 만두, 김, 소스처럼 완성된 식품을 해외에 판매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앞으로는 삼계탕, 불고기, 갈비, 제육볶음, 닭갈비, 양념치킨과 같은 육류 기반 고부가가치 제품이 더 많이 해외시장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는 그 제품을 안전하게 생산하고 관리하고 수출하는 기술과 시스템까지 한국의 수출상품이 될 수 있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수출이 경제에서 중요한 나라라면 이것은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전략이다.


우리는 미국에 “한국 고기도 안전하니 믿어달라”고 계속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좋은 방법은 믿을 수밖에 없는 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삼계탕 한 봉지가 미국 시장에 들어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그 경험을 단순히 한 제품의 성공사례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미국의 기준이 까다롭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국제 식품무역에서 결국 경쟁력이 되는 것은 안전성을 지속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수출전용 AI 축산·식품안전 클러스터를 한번 만들어볼 것을 제안한다. 처음부터 전국을 바꿀 필요도 없다. 한 지역, 몇 개 농장, 한두 개 도축·가공시설에서 시작해도 된다. 미국 수출용 제품을 대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고, 정부와 대학, 식품기업, 축산업계, AI·IT 기업이 함께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표준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리고 성공한다면 돼지고기, 소고기, 오리고기와 다양한 가공육으로 확대하고, 미국을 넘어 유럽과 중동, 아시아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기술과 운영 시스템은 또 다른 국가에 수출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삼계탕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전혀 다른 산업으로 발전한다.


K-Food에서 K-Meat로, K-Meat에서 K-Food Safety Technology로. 앞으로 한국이 세계에 수출해야 할 것은 고기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국산 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기술, 그리고 그 신뢰를 만들어내는 시스템까지 함께 수출해야 한다.


글 / 김한송 (Hans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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