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음식은 왜 미국에서 '고급 음식'이 되었을까?

스시 한 접시가 ‘비싼 음식’이 되기까지, 일본 경제와 미국 시장이 만든 프리미엄의 역사
미국에서 일본 음식점을 가다 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하게 된다. 라멘 한 그릇이 20달러를 넘고, 제대로 된 스시 레스토랑에서는 1인당 100달러를 쓰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 오마카세로 올라가면 200달러, 300달러가 넘어가는 식사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국 소비자들이 이런 가격을 꽤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일본 음식에는 어딘가 정교하고, 전문적이며,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셰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음식이라는 이미지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음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일본 음식이라고 해서 모두 고급 음식은 아니다. 라멘, 우동, 돈부리, 카레, 야키토리, 가라아게 같은 음식은 일본에서 오랫동안 서민과 직장인이 즐겨 먹어온 일상식이다. 심지어 오늘날 미국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스시 역시 역사적으로 모든 종류가 최고급 요리였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왜 미국에서는 일본 음식이 유독 ‘고급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
나는 그 답을 음식 자체에서만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음식이 미국에 자리 잡은 시대, 그것을 먹었던 사람들, 당시 일본이라는 국가가 미국인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음식의 가격은 식재료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음식의 가격을 만든다.

1. 미국에 처음 자리 잡은 스시는 처음부터 싸구려 음식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스시가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일본계 미국인 사회에서는 이전부터 일본 음식과 스시가 존재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일본계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다시 소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의 스시 문화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미국 스시의 역사를 연구한 자료들을 보면, 전후 미국에서 일본계 소비자들이 먹던 스시가 점차 비일본계 미국인들에게 소개됐고, 1960년대 초중반부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Sushi Bar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당시 미국에 들어온 스시의 형태와 고객층이다. 당시 일본에서도 도쿄식 스시바는 누구나 매일 먹는 저렴한 식사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1960년대 일본의 스시바는 상당히 비싼 외식이었으며 부유한 고객과 기업인들이 주요 고객층에 포함됐다. 그리고 바로 이 비교적 고급스러운 형태의 스시바 문화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많은 이민 음식이 미국에 들어올 때 노동자들의 저렴한 음식으로 출발해 시간이 흐르면서 고급화된 것과는 조금 다른 길이었다.
미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려질 때부터 스시는 카운터 너머에 전문 셰프가 서 있고, 손님 앞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주문에 맞춰 한 점씩 만들어 제공하는 음식이었다. 손님은 셰프의 칼질과 작업을 바로 앞에서 지켜봤다. 다시 말해 미국인은 스시를 단순히 ‘날생선과 밥’으로 처음 경험한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눈앞에서 만들어주는 특별한 일본 음식’으로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음식의 맛뿐 아니라 셰프의 기술과 서비스 방식, 공간 자체가 하나의 경험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
서부에서는 미국 스시 역사의 상징적인 레스토랑이 등장했다.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스시바의 출발점으로 자주 언급되는 LA 리틀도쿄의 가와후쿠(Kawafuku)다. 1960년대 중반 일본 식품 수입업자 노리토시 가나이(Noritoshi Kanai)가 문을 열었고, 일본인 스시 셰프 시게오 사이토(Shigeo Saito)가 주방을 맡았다. 사이토의 아내는 홀 서비스를 담당했다. 가와후쿠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미국에서 스시를 판매했기 때문이 아니다. 손님이 카운터에 앉으면 셰프가 바로 앞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주문에 맞춰 스시를 만들어 한 점씩 제공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본격적인 Sushi Bar의 경험을 미국에서 구현한 것이다.
가와후쿠의 재료 조달 방식도 흥미롭다. 성게, 전복, 고등어, 참치 등 캘리포니아에서 구할 수 있는 해산물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동시에 일본 쓰키지 시장에서도 미국에서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해산물을 가져왔다. 처음부터 모든 생선을 일본에서 공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현지 식재료에 일본의 기술과 식문화를 결합하고, 필요한 프리미엄 식재료는 일본에서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훗날 미국의 스시 산업이 발전하는 방식의 초기 모델을 이미 보여주고 있었던 셈이다.
초기 가와후쿠의 주요 고객은 미국 대중이라기보다 미국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일본인 비즈니스맨들이었다. 그러나 스시가 일본계 커뮤니티를 넘어 미국의 외식문화로 확장되면서 또 다른 형태의 일본 레스토랑도 등장했다. 대표적인 곳이 Tokyo Kaikan이었다. Tokyo Kaikan은 가와후쿠와 달리 약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다이닝룸을 갖췄고, 스시뿐 아니라 덴푸라와 철판요리 등 다양한 일본 음식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2층에는 Tokyo-a-Go-Go라는 디스코까지 있었다. 일본 음식이 단순히 일본 이민자들이 고향의 맛을 찾기 위해 먹는 음식에서 벗어나, 미국 소비자가 돈을 내고 경험하는 하나의 세련된 외식문화로 확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에서 스시는 가장 저렴한 음식으로 시장을 넓힌 뒤 나중에 고급화된 음식과는 출발부터 달랐다. 전문 셰프가 손님 앞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카운터 문화, 신선한 해산물, 일본에서 들어오는 일부 프리미엄 식재료, 일본인 기업 고객, 그리고 뉴욕과 LA의 비교적 고급스러운 외식 공간이 결합하면서 스시는 미국에서 처음부터 일정한 프리미엄 이미지를 가지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곧 미국 스시의 대중화를 폭발적으로 앞당길 또 하나의 변화가 등장한다. 바로 California Roll이었다.
뉴욕에서도 이런 움직임은 일찍 나타났다. 1963년 문을 연 일본 레스토랑 Nippon의 스시바는 당시 이미 고급 레스토랑 문화의 일부로 언급됐고, 1972년에는 뉴욕의 엘리트 사교클럽인 Harvard Club에도 스시바가 들어갔다. 1970년대가 되면서 뉴욕의 음식평론가들도 스시를 점차 gourmet food의 영역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결국 스시가 미국인의 입에 들어간 순간만큼이나 중요했던 것은 어떤 공간에서, 어떤 방식으로 먹었느냐였다.

2. 스시를 미국인에게 소개한 사람들은 일본 기업인들이었다
여기서 또 하나 흥미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전후 미국으로 건너온 일본 기업인과 주재원들이다. 1950~60년대를 지나면서 일본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했고 일본 기업들의 해외 진출도 확대됐다. 자동차, 전자제품, 무역, 금융을 비롯한 일본 기업의 미국 활동이 커지면서 일본에서 파견된 기업인과 주재원들도 미국의 주요 도시로 들어왔다.이들은 이전 세대의 일본 이민자와는 소비 패턴이 달랐다. 미국 스시의 역사를 연구한 논문에는 상당히 중요한 대목이 나온다. 전후 미국에 온 일본인들은 이전의 노동계층 이민자와 달리 회사에서 지급되는 출장비와 경비를 가지고 있었고, 일본의 부유층이 즐기던 음식 취향도 함께 가져왔다. 그리고 이 일본인 관리자 계층이 미국인 동료들에게 스시를 소개하는 일종의 gatekeeper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을 상상해보면 이해가 쉽다. 일본 회사의 임원이 미국의 거래처 관계자를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장소는 햄버거집도 아니고 저렴한 이민자 식당도 아니다. 일본인 셰프가 카운터 안에서 생선을 다루는 제대로 된 일본 식당이다.
미국인 입장에서 스시는 이렇게 처음 경험된다.
“일본에서 온 중요한 비즈니스맨들이 먹는 음식.”
이것은 브랜드 마케팅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음식의 첫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어떤 음식이 미국에 처음 들어올 때 노동자들이 먹는 5달러짜리 음식으로 인식되는 것과 기업 임원이 거래처를 접대하는 음식으로 인식되는 것은 이후 수십 년간의 가격 결정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 1970년대 미국에서 스시 레스토랑의 확산은 실제로 일본인과 일본 자본의 이동을 따라가는 모습을 보였고 동시에 미국의 고소득 고객을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1983년 워싱턴포스트가 워싱턴 D.C.의 스시 붐을 보도했을 때도 흥미로운 장면이 등장한다. 지역 최초의 스시 전문점 가운데 하나였던 Sushi-Ko의 초기 충성 고객에는 인근 일본대사관의 외교관들이 있었다. 당시 스시를 비롯한 아시아 고급 레스토랑은 기업 경비로 식사하는 이른바 expense-account crowd와도 연결되고 있었다. 결국 스시를 미국 사회에 소개한 것은 일본인만이 아니었다.
일본의 경제성장 그 자체가 스시의 세일즈맨 역할을 한 것이다.

3. 일본이 부자가 되자 일본 음식도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로 넘어가면 이 이야기는 음식의 영역을 넘어선다. 전후 폐허에서 출발했던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국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Toyota와 Honda 자동차가 미국 도로를 달리고 Sony 제품이 미국 가정에 들어갔다. 일본 기업들이 미국의 부동산과 기업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1980년대 후반에는 미국 사회가 일본의 경제력을 경계할 정도가 됐다. 음식은 이런 국가 이미지에서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는 한 국가의 자동차, 전자제품, 디자인, 서비스, 문화에서 받은 인상을 음식에도 어느 정도 투영한다. 당시 일본은 미국 소비자에게 점점 정교함, 기술, 품질, 효율성을 상징하는 나라가 되었고 공교롭게도 스시는 그런 일본의 이미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스시가 가지고 있는 '작고. 정교하며. 칼질이 어렵고, 재료의 품질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셰프가 손님 앞에서 직접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미국인들이 쉽게 흉내 내기 어려워 보였다.
이것은 고급화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소비자가 “나도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음식과 “이건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음식에는 지불 의사의 차이가 생긴다. 스시 바의 구조는 그 전문성을 극대화했다. 손님 앞에 셰프가 있고, 셰프 앞에는 칼과 생선이 있다. 주문하면 즉석에서 한 점씩 만들어준다.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공연처럼 보인다. 미국인이 일본 음식에서 이야기하는 craftsmanship, 즉 장인정신의 이미지가 만들어지기 좋은 구조였다.흥미롭게도 이것은 일본 정부가 어느 날 회의를 열어 “일본 음식을 고급화하자”고 결정해서 만들어낸 결과라기보다, 일본의 경제성장과 기업의 해외 진출, 일본인 비즈니스 고객의 소비력, 스시 바라는 독특한 서비스 형태, 미국 상류층의 새로운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수십 년 동안 겹치면서 만들어진 결과에 가까웠다. 일본 경제의 가치가 올라가면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갔고, 일본 음식도 그 후광을 함께 받은 것이다.

4. 그리고 Hollywood가 일본 음식을 ‘Cool’하게 만들었다
경제력과 비즈니스가 일본 음식의 기반을 만들었다면, 1980~90년대에는 또 다른 힘이 붙기 시작한다. Hollywood와 Celebrity Culture다. 여기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마쓰히사 노부유키, 즉 Nobu Matsuhisa다.
노부는 일본에서 스시를 배운 뒤 남미 등을 거쳐 미국에 정착했고, 1987년 Beverly Hills에 자신의 이름을 건 Matsuhisa를 열었다. 공식 기록에서도 이 식당은 1987년 개업한 것으로 확인된다. 그리고 이 레스토랑에 Hollywood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로버트 드니로(Robert De Niro)'였다. 드니로는Matsuhisa의 단골이 되었고 노부에게 뉴욕에 함께 레스토랑을 열자고 제안했다. 노부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결국 1994년 De Niro 등과 함께 뉴욕 Tribeca에 첫 Nobu를 열었다. 1994년 당시 New Yorker가 Nobu를 다룬 기사를 보면 이미 분위기가 확연하다. 패션계와 음반업계 사람들이 예약을 기다렸고, Matsuhisa는 Hollywood의 최고 맛집으로 묘사됐다. 이건 일본 음식의 이미지에 또 한 번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Japanese Food = Business Food였던 것이점점 Japanese Food = Celebrity Food가 된 것이다. 여기에 디자인된 공간, 좋은 술, 세련된 서비스, 일본과 서양을 결합한 요리가 붙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Nobu는 일본 음식을 ‘비싸게 팔아도 되는 음식’이라는 수준을 넘어 ‘비싸야 오히려 어울리는 경험’으로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미국의 고급 일본 음식 시장을 보면 이 유산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Omakase, Kaiseki, Wagyu, Sake Pairing 같은 단어는 이제 미국 대도시의 고급 외식시장에서 낯설지 않다. 여기서 일본 음식이 구축한 가장 강력한 자산이 드러난다. 일본 음식에는 가격의 사다리가 있다. 마트에서 10달러짜리 스시를 먹을 수도 있고, 15달러짜리 우동을 먹을 수도 있으며, 20달러짜리 라멘을 먹을 수도 있다. 동시에 100달러짜리 스시 코스도 있고 300달러짜리 오마카세도 존재한다. 싼 일본 음식이 존재한다고 해서 비싼 일본 음식의 가치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 대중화와 고급화를 동시에 해낸 것이다.
5. 일본 음식이 미국에서 성공한 진짜 이유는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나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외식업을 하면서 음식의 맛만큼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소비자가 그 음식에 얼마까지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다. 음식의 원가는 숫자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음식의 가치는 숫자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똑같은 100달러를 써도 어떤 음식에는 “비싸다”고 말하고 어떤 음식에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말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Perceived Value, 즉 소비자가 느끼는 가치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음식이 미국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공은 스시집을 많이 만든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미국 소비자에게 일본 음식에는 높은 가격을 지불해도 된다는 인식을 만든 것. 나는 이것이 더 큰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부분은 지금의 K-Food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음식의 인지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Kimchi, Korean BBQ, Korean Fried Chicken, Buldak, Bibimbap 같은 단어를 알아듣는 미국인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인지도가 높아지는 것과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인이 한국 음식을 많이 먹는 것과 한국 음식에 더 높은 가격을 기꺼이 지불하는 것도 다른 문제다. 일본 음식의 미국 진출사를 보면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본은 단순히 음식을 수출한 것이 아니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기업인이 움직였고, 기업인을 따라 식당이 움직였으며, 그 식당에 미국의 비즈니스 엘리트가 들어갔다. 이후 Hollywood와 셀러브리티 문화가 붙었고, 스시 셰프라는 전문직의 이미지와 장인정신이라는 이야기가 더해졌다. 그 결과 일본 음식은 미국에서 하나의 Premium Category를 만들어냈다.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긴다. 일본 음식이 고급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얻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스시는 뉴욕과 LA를 넘어 미국의 작은 도시까지 들어갈 수 있었을까? 생선은 햄버거 패티와 다르다. 신선도가 중요하고 냉장·냉동 유통이 필요하며 여러 종류의 생선을 지속적으로 공급해야 한다. 일본 식재료도 필요하다. 아무리 뉴욕에서 스시가 유행한다고 해도 이런 공급망이 없다면 미국 중서부와 남부의 작은 도시까지 스시집이 생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실제로 그것이 일어났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대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스시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누가 그 생선을 미국 전역으로 날랐을까?
그 뒤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Toyota나 Sony와는 전혀 다른 일본계 네트워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뜻밖에도 True World Foods와 통일교, 그리고 미국 전역을 연결한 거대한 수산물 물류망을 만나게 된다. 일본 음식의 미국 성공을 완성한 것은 어쩌면 화려한 스시 셰프가 아니라, 새벽마다 미국의 고속도로를 달리던 냉장트럭이었을지도 모른다.
2화에서 계속.
글 / 김한송(Hans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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