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바의 진화: RXBAR에서 David까지

미국 식품시장은 이제 ‘건강한가’를 넘어 ‘얼마나 효율적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요즘 미국 식품시장을 보면 거의 모든 곳에서 ‘Protein’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다. 요거트와 시리얼은 물론이고 칩, 쿠키, 아이스크림, 음료까지 단백질 함량을 전면에 내세운 제품이 빠르게 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백질은 운동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나 관심을 갖는 영양소라는 이미지가 강했지만, 이제는 일반 소비자까지 제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이 됐다. 이러한 미국의 단백질 열풍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의 브랜드를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바로 RXBAR다.
RXBAR, 성분표를 패키지 앞으로 꺼내다
RXBAR는 2013년 등장한 단백질 바 브랜드다. 당시 시장에는 이미 수많은 프로틴 바가 존재했지만 RXBAR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식을 바꿨다. 기존 제품들의 패키지 뒷면에는 소비자가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긴 성분표가 적혀 있었고, 단백질 바 특유의 인공적인 이미지도 강했다. RXBAR는 정반대로 갔다. 패키지 앞면에 달걀흰자, 아몬드, 캐슈넛 등 주요 원재료를 큼지막하게 적어 넣었다. 소비자가 제품을 집어 드는 순간 “이 제품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를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지금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강력한 접근이었다. 건강에 좋다고 설명하는 대신 무엇을 넣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소비자가 직접 판단하게 한 것이다.
이 전략은 당시 미국 식품시장에서 커지고 있던 ‘클린 라벨(Clean Label)’ 흐름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복잡한 설명보다 이해하기 쉬운 원재료, 투명한 성분 정보, 짧고 명확한 메시지를 원하는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RXBAR는 빠르게 성장했고, 결국 2017년 약 6억 달러에 Kellogg Company에 인수됐다. 작은 식품 스타트업이 불과 몇 년 만에 거대 식품기업의 인수 대상이 된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RXBAR의 공동 창업자였던 Peter Rahal은 몇 년 뒤 다시 단백질 바 시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RXBAR와는 전혀 다른 질문을 들고 나왔다. “단백질을 먹기 위해 왜 이렇게 많은 칼로리를 함께 섭취해야 할까?” 일부 기존 단백질 바는 200칼로리를 훌쩍 넘으면서도 단백질 함량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간식이나 식사 대용이라는 관점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오직 단백질 섭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에게는 다른 계산법이 적용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단백질이 몇 그램 들어 있는가’가 아니라 같은 칼로리를 섭취했을 때 얼마나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는가였다.
David, 이제 소비자는 ‘단백질의 효율’을 계산한다
이 질문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David다. David가 전면에 내세운 개념은 ‘단백질 밀도(Protein Density)’다. 대표적인 프로틴 바는 약 150칼로리에 단백질 28g을 제공한다. 단순히 ‘고단백’이라는 표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칼로리 대비 단백질의 비율 자체를 제품 경쟁력으로 만든 것이다. RXBAR가 소비자에게 “우리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보세요”라고 이야기했다면, David는 “이 숫자를 보세요”라고 이야기한다. 미국의 건강식품 소비 기준이 원재료의 투명성에서 영양의 효율성으로 한 단계 더 세분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다.
패키지에서도 이런 변화가 그대로 나타난다. RXBAR가 주요 원재료를 패키지 전면에 보여줬다면 David는 단백질과 칼로리 같은 영양 정보를 강하게 부각한다. 소비자가 몇 초 안에 제품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유통 방식 역시 현대적인 식품 스타트업의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부터 전국 대형 슈퍼마켓에 제품을 깔기보다 온라인 직접 판매(DTC)를 활용하고 피트니스와 고단백 식단에 관심이 많은 소비자층을 먼저 공략한다. 이후 프리미엄 식품매장 등으로 오프라인 접점을 확대하며 브랜드 인지도를 넓혀간다. 결국 David가 판매하는 것은 단순한 단백질 바가 아니다. ‘적은 칼로리로 많은 단백질을 섭취한다’는 하나의 명확한 소비 이유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RXBAR에서 David로 이어지는 변화를 보면 미국 건강식품 시장이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지도 읽을 수 있다. 처음에는 ‘건강하다’는 이미지가 중요했다. 저지방, 내추럴, 오가닉 같은 단어만으로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이후 소비자들은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었는데?”라고 묻기 시작했다. 원재료와 첨가물, 당류, 성분표를 직접 확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RXBAR는 바로 이 변화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제 소비자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단백질은 몇 그램인지, 칼로리는 얼마인지, 당류는 얼마나 들어 있는지, 자신이 섭취하는 칼로리에 비해 어떤 영양적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까지 비교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건강한 음식’에서 ‘목적이 분명한 음식’으로 시장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백질 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미국 슈퍼마켓을 둘러보면 기존에는 단순한 간식으로 판매되던 제품들까지 ‘High Protein’, ‘Low Sugar’, ‘High Fiber’ 같은 구체적인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제품은 점점 더 정교해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단순해지고 있다. RXBAR의 성공도 그랬고 David의 전략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제품을 들고 오랫동안 설명을 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패키지를 보는 순간 제품의 핵심을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다.

RXBAR와 David가 K-Food에 던지는 질문
이 두 브랜드의 이야기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한국 식품기업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식품기업들은 종종 제품의 장점을 너무 많이 설명하려고 한다. 전통적인 제조법, 좋은 원재료, 한국에서의 역사, 건강상의 장점, 맛, 인증 등 하나의 패키지 안에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 한다. 하지만 미국 소비자가 매장에서 하나의 제품을 바라보는 시간은 길지 않다. 그 짧은 순간에 소비자는 결국 한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어야 한다. “내가 왜 이 제품을 사야 하는가?”
고단백 제품이라면 단백질 함량을 보여줘야 하고, 저당 제품이라면 당류가 얼마나 낮은지 알려줘야 한다. 발효식품이라면 ‘발효’라는 특성을 미국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는 가치로 전달해야 한다. 좋은 원재료를 사용했다면 복잡한 설명보다 그 원재료 자체를 전면에 보여주는 것이 더 강력할 수도 있다. 현지화 역시 단순히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맛을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제품의 장점을 미국 소비자가 이해하는 언어로 다시 정의하는 것도 현지화다.
RXBAR가 “무엇으로 만들었는가”를 보여주며 시장을 흔들었다면, David는 “얼마나 효율적으로 영양을 섭취할 수 있는가”를 숫자로 보여주고 있다. 두 브랜드가 사용하는 언어는 다르지만 공통점은 분명하다. 제품을 사야 할 이유가 단순하고 명확하다. 지금 미국 식품시장의 흐름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단백질은 많고, 설탕은 적으며, 메시지는 명확해야 한다.
결국 RXBAR에서 David로 이어지는 변화에서 우리가 봐야 할 것은 단백질 바 자체가 아니다. 미국 소비자가 식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얼마나 빠르게 바뀌고 있는가다. 미국 시장을 준비하는 K-Food 기업이라면 이제 “우리 제품은 맛있습니다”라는 설명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무엇이 다른가. 왜 먹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소비자가 3초 안에 이해할 수 있는가. 어쩌면 지금 미국 식품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은 바로 그 3초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글/ 김한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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