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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다시 태어난 중국 음식,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

Aug 13
3 min read



찹수이에서 오렌지 치킨까지, 이민자의 음식이 미국인의 일상식이 되기까지


미국 어디를 가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식당 가운데 하나가 중국 음식점이다. 뉴욕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고 작은 도시나 교외 지역에도 어김없이 하나쯤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미국에서 흔히 만나는 중국 음식은 중국 현지의 음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오렌지 치킨, 제너럴 쏘 치킨(General Tso’s Chicken), 쿵파오 치킨, 몽골리안 비프처럼 미국인에게 익숙한 메뉴 상당수는 중국의 전통 음식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만나 변화하고 발전한 음식이다. 그래서 이를 흔히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American Chinese Food)’​라고 부른다. 이 음식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중국 음식 이야기를 넘어 이민과 차별, 생존과 현지화가 어떻게 하나의 새로운 음식문화를 만들어냈는지를 볼 수 있다.



이민자의 생존에서 시작된 아메리칸 차이니즈

미국에서 중국 음식이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중국인 이민자가 크게 늘어나면서부터다. 특히 캘리포니아 골드러시와 대륙횡단철도 건설 과정에서 많은 중국인 노동자가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들과 함께 중국의 식문화도 자연스럽게 미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당시 중국인 이민자들은 심각한 인종차별과 배제 속에서 살아야 했다. 1882년에는 중국인 노동자의 이민을 제한하는 Chinese Exclusion Act까지 시행될 정도로 반중국 정서가 강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중국계 이민자들에게 음식점은 비교적 진입할 수 있는 생계수단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해 미국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음식이 찹수이(Chop Suey)​다. 찹수이는 고기와 여러 채소를 볶아 소스와 함께 내는 음식으로, 미국에서 중국 음식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메뉴가 됐다.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미국에서 대중적인 ‘중국 음식’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중국 음식과 중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강한 이국화와 편견도 존재했다. 식당 간판과 메뉴판에는 서구 사회가 상상하는 ‘동양적인 이미지’가 과장되어 사용됐고, 중국 음식은 한편으로는 낯설고 이국적인 음식, 다른 한편으로는 값싸고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소비됐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바로 그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양이 중국 음식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처음에는 중국계 노동자와 이민자들이 먹던 음식이었지만 점차 노동자와 학생, 중산층까지 즐겨 찾는 음식으로 확대되면서 중국 음식점은 미국 도시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찹수이에서 오렌지 치킨까지, 미국인의 입맛을 읽다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가 흥미로운 이유는 중국 음식을 그대로 미국에 옮겨놓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계 이민자들은 미국에서 구할 수 있는 식재료와 미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끊임없이 음식을 변화시켰다. 소스는 조금 더 달고 진해졌으며 튀기는 조리법이 늘어났다. 고기 사용량도 많아졌고 밥이나 면과 함께 푸짐하게 제공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다. 그렇게 중국 음식이 미국에서 새로운 음식으로 다시 태어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오렌지 치킨이다.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에 달콤하고 새콤한 오렌지 계열의 소스를 입힌 이 음식은 이제 미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중국 음식 가운데 하나다. 제너럴 쏘 치킨 역시 튀긴 닭고기에 달고 매콤한 소스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아메리칸 차이니즈 메뉴다. 몽골리안 비프 역시 이름만 들으면 몽골의 전통 음식처럼 느껴지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알려진 형태는 미국의 중국계 외식문화 속에서 대중화된 메뉴다. 쿵파오 치킨처럼 중국에 뿌리를 둔 음식도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현지 소비자의 취향과 식재료에 맞춰 변화했다.


이 음식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맛을 이해하기 쉽고, 가격이 합리적이며, 양이 많고, 밥이나 면과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테이크아웃에 적합했다. 종이 박스에 음식을 담아 빠르게 가져갈 수 있는 중국 음식점의 시스템은 미국인의 생활방식과 잘 맞았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보는 중국 음식 테이크아웃 박스 역시 이런 문화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됐다.

결국 중국계 외식업자들은 미국인에게 “중국의 진짜 음식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대신 미국 소비자가 중국 음식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고민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다. 처음에는 생존을 위한 변화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의 독립적인 음식문화가 됐다.


‘정통’이 아니어도 하나의 음식문화가 될 수 있다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를 이야기할 때 종종 “이건 진짜 중국 음식이 아니다”라는 평가가 나온다. 물론 중국 현지의 음식과 비교하면 상당히 다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이 음식을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중국계 이민자들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음식과 미국인의 입맛을 결합했고, 그 결과 새로운 음식문화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에서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는 더 이상 중국계 미국인만의 음식이 아니다.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중국 음식점에서 볶음밥과 치킨을 주문하고, 가족들은 주말 저녁에 여러 메뉴를 주문해 나눠 먹는다. 작은 미국 도시에서도 피자와 햄버거만큼 자연스럽게 중국 음식 테이크아웃점을 만날 수 있다. 한때 낯설고 이국적인 이민자의 음식이었던 것이 이제는 미국인의 일상적인 음식이 된 것이다.


이 역사는 지금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있는 K-Food에도 꽤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한국 음식을 무조건 원형 그대로 전달하는 것만이 정답일까? 반대로 미국인의 입맛에 맞춘다는 이유로 한국적인 특징을 모두 없애는 것도 답은 아닐 것이다.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가 보여준 가장 중요한 성공 방식은 자신의 뿌리를 완전히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장의 식재료, 가격, 소비 방식과 입맛을 받아들이면서 끊임없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지금의 K-치킨, 코리안 BBQ, 불고기 라이스볼, 김밥도 어쩌면 비슷한 과정을 지나고 있다. 앞으로 20년, 30년 뒤에는 우리가 지금 ‘현지화된 한식’이라고 부르는 음식 가운데 일부가 미국 음식문화의 한 카테고리로 완전히 자리 잡을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의 역사는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미국 시장을 바라보는 K-Food가 참고할 만한 미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수많은 아메리칸 차이니즈 메뉴 가운데 가장 자주 찾는 것은 쿵파오 치킨이다. 매콤하고 짭짤하면서도 약간의 단맛이 있고, 밥과 함께 먹기 좋다. 어쩌면 이런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맛이야말로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가 100년 넘게 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글/ 김한송 (Hans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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